2011.09.28 16:03 한국언론지상사에서 근무했던 손은주님의 후기입니다. 조회 수 2618 Atachment 첨부 '1' 뉴욕 이라는 도시는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랬기 때문에 처음 뉴욕 인턴십에 대해 듣고 막연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먼저 인턴십을 다녀온 과 동기의 추천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출국 하루 전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뉴욕이라는 환상의 도시에 실제로 간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고 단순히 뉴욕 여행이 아니라 거기서인턴십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마냥 기쁘거나 설레지만은 않았다. 아직 회사가 정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더욱이 1지망으로 적었던 언론사가 최고 경쟁률이라는 얘기에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뉴욕으로 떠나기 전, 영문이력서 컨설팅과 실무영어, 영어 인터뷰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들뜬 마음을 안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열 네 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처음으로 뉴욕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뉴욕에 마냥 놀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뉴욕에 도착해서도 며칠간 교육을 더 받았다. 회사 면접은 교육을 받는 중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면접을 보던 이십 분이 스무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었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중언부언하고 말았다. 그래서 낙심하고 있는 와중에 숙소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같이 온 인턴십 친구들 중 언론사 인턴은 총 다섯 명이었는데 광고국과 판매사업국에 배치되었다. 나는 판매사업국에서도 문화사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배치 받았다. 사업국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각종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들의 준비를 도왔다. 무엇보다 선배님들께서 늘 신경 써주셔서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설명도 해주시고 외근 나가실 때도 항상 데려 다니며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자면 ‘시니어 엑스포’와 ‘킴보 장학생 선발’이 아닐까 싶다. ‘시니어 엑스포’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두 차례에 걸려 열렸는데, ‘뉴저지 시니어 엑스포’ 탓에 인턴십 학생 전원이 참석하는 바비큐 파티도 가지 못하고 주말에도 행사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이었다. 시니어 엑스포에 오신 어르신분들이 이런 행사를 열어줘서 참 고맙다며 직접 만드신 빵을 건네 주시기도 하고 고생 많다며 음료수를 챙겨주실 때는 정말이지 뿌듯했다. 또한 ‘킴보 장학생 선발’은 지원자들의 서류 정리서부터 수상자 선발 과정, 시상식까지 다 지켜보았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버드, 예일, MIT등에 다니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장학금을 받았는데, 킴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훗날 훌륭한 글로벌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아침부터 플러싱 한인 타운에 가서 한인 상가를 돌며 열독률 조사를 한 것과 교육박람회에 관한 플라이어를 나눠드린 일도 기억에 남는다. 뉴욕에서의 한 달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시간이 아까워 부지런히 관광을 다니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눈 깜빡 할 새 하루가 지나갔다. 한국에 돌아가면 뉴욕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 특히 뉴욕에서의 인턴 생활은 실무 경험을 익히고 사회 생활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꿈의 도시였던 뉴욕은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한다. 다음에 뉴욕에 올 때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뉴욕을 찾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며 후기를 끝마친다. Facebook Twitter Google Pinterest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댓글 쓰기 ?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목록 위로 이전 다음
뉴욕 이라는 도시는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랬기 때문에 처음 뉴욕 인턴십에 대해 듣고 막연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먼저 인턴십을 다녀온 과 동기의 추천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출국 하루 전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뉴욕이라는 환상의 도시에 실제로 간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고 단순히 뉴욕 여행이 아니라 거기서인턴십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마냥 기쁘거나 설레지만은 않았다. 아직 회사가 정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더욱이 1지망으로 적었던 언론사가 최고 경쟁률이라는 얘기에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뉴욕으로 떠나기 전, 영문이력서 컨설팅과 실무영어, 영어 인터뷰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들뜬 마음을 안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열 네 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처음으로 뉴욕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뉴욕에 마냥 놀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뉴욕에 도착해서도 며칠간 교육을 더 받았다. 회사 면접은 교육을 받는 중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면접을 보던 이십 분이 스무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었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중언부언하고 말았다. 그래서 낙심하고 있는 와중에 숙소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같이 온 인턴십 친구들 중 언론사 인턴은 총 다섯 명이었는데 광고국과 판매사업국에 배치되었다. 나는 판매사업국에서도 문화사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배치 받았다. 사업국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각종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들의 준비를 도왔다. 무엇보다 선배님들께서 늘 신경 써주셔서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설명도 해주시고 외근 나가실 때도 항상 데려 다니며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자면 ‘시니어 엑스포’와 ‘킴보 장학생 선발’이 아닐까 싶다. ‘시니어 엑스포’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두 차례에 걸려 열렸는데, ‘뉴저지 시니어 엑스포’ 탓에 인턴십 학생 전원이 참석하는 바비큐 파티도 가지 못하고 주말에도 행사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이었다. 시니어 엑스포에 오신 어르신분들이 이런 행사를 열어줘서 참 고맙다며 직접 만드신 빵을 건네 주시기도 하고 고생 많다며 음료수를 챙겨주실 때는 정말이지 뿌듯했다. 또한 ‘킴보 장학생 선발’은 지원자들의 서류 정리서부터 수상자 선발 과정, 시상식까지 다 지켜보았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버드, 예일, MIT등에 다니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장학금을 받았는데, 킴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훗날 훌륭한 글로벌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아침부터 플러싱 한인 타운에 가서 한인 상가를 돌며 열독률 조사를 한 것과 교육박람회에 관한 플라이어를 나눠드린 일도 기억에 남는다. 뉴욕에서의 한 달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시간이 아까워 부지런히 관광을 다니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눈 깜빡 할 새 하루가 지나갔다. 한국에 돌아가면 뉴욕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 특히 뉴욕에서의 인턴 생활은 실무 경험을 익히고 사회 생활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꿈의 도시였던 뉴욕은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한다. 다음에 뉴욕에 올 때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뉴욕을 찾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며 후기를 끝마친다.